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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택 임대 시장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강력한 금융 규제 조치에 이어, 입주자가 한 집에서 최장 9년까지 살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이 추진되며 임대 생태계 전반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세입자에게는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집주인에게는 재산 활용의 제약을 동시에 가져올 이 제도는 과연 시장에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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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9년 거주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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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서 9년으로, 거주 기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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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제출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수정안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기존에 세입자가 한 번만 연장을 요청할 수 있었던 권리를 두 번까지 확대하고, 매번 연장되는 계약 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것입니다.
이로써 입주자는 처음 계약 3년에 두 차례의 연장권을 더해 총 9년간 한 장소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이는 현재의 최장 4년과 비교하면 5년이나 긴 기간입니다.
여러 정당 의원들이 공동으로 발의한 이 법안은 잦은 이주로 피로감을 느끼는 입주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겠다는 정책 의지에서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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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법안에는 또 다른 조항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집주인은 국세와 지방세 납부 증명은 물론 건강보험료 납부 기록까지 세입자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보증금과 선순위 담보, 그리고 미납 세금을 합친 금액이 주택 가치의 70퍼센트를 초과하면 안 된다는 제한까지 신설됩니다.
입법자들은 이를 통해 입주민이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보호하겠다는 취지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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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제도가 시장의 원리를 거스를 때, 의도와 결과는 정반대로 흐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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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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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를 위한 방패가 집주인에게는 족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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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의 기획 의도는 분명 긍정적입니다. 급등하는 주거비와 빈번한 이사는 많은 가구에게 실질적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거처는 삶의 기본이며, 특히 자녀가 있는 가정에게는 더욱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합니다. 임대 수익은 집주인의 기대 수익과 직결되는데, 계약 기간을 법으로 강제하면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집주인 입장에서는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주택을 팔 수도, 임대료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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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연 5퍼센트로 제한된 임대료 인상률은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제약이 누적되면 집주인들은 전세를 기피하고 월세로 전환하려는 유인이 커집니다.
전문가들은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입주민 보호를 위해 만든 규제가 오히려 전세 공급을 축소시키고, 남은 매물의 가격을 끌어올리며, 월세 전환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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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당시, 거래량은 25% 급감하고 가격은 9~11% 급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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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합니다. 특히 수요와 공급이 민감하게 움직이는 주택 시장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대출 규제와 거주권 확대라는 두 가지 큰 변화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전세라는 한국 고유의 임대 방식이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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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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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매물은 사라지고, 월세만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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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전세 매물은 이미 감소 추세입니다. 부동산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 물건은 올해 들어 2만3천 건 수준으로 줄었고, 경기 지역도 1만9천 건대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정부의 강력한 대출 통제 정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6월 말 발표된 대책으로 전세 대출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거래가 얼어붙었고, 여기에 9년 거주권 법안까지 더해지면 전세 시장은 더욱 경색될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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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들은 장기 계약에 대한 부담감으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150만 원, 혹은 보증금 1억5천만 원에 월세 300만 원 같은 조건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입주민 입장에서는 매달 나가는 월세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셈입니다. 보증금을 크게 올리거나 아예 전세를 포기하는 집주인들의 결정은 결국 세입자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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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세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9년 갱신권은 집주인들을 더욱 소극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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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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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보호는 필수입니다. 하지만 집주인의 부담이 과도하면 시장은 왜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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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의 주거 안정은 분명 지켜져야 할 가치입니다. 그러나 한쪽에만 무게가 실리면 시장 전체가 균형을 잃습니다. 많은 집주인들은 이미 현재의 갱신권 때문에 매매도 어렵고, 5퍼센트 임대료 상한에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한국의 임대 시장은 점진적으로 전세 중심에서 월세 중심으로 변화하는 중입니다. 이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지만, 급격한 전환은 입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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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국회는 제도의 목표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실제 반응과 구조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입법의 선한 의도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지 않으려면, 임대인과 임차인 양측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듣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결국 지속 가능한 주거 생태계는 한쪽의 희생이 아닌, 양측의 합리적 타협 위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9년 거주권 법안이 실제로 통과될지, 또 통과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조정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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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임대 시장의 미래는 규제와 자율, 보호와 자유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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